[심준규의 ESG 모델링 1] 유니레버上 ‘지속가능 생활 계획’을 통해 본 ESG 경영의 본질
- Jace Shim
-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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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9월 8일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우리 회사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매년 발간하고 있는데, 정작 경영 성과는 예전만 못합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요?”
얼마 전 기업 임원 간담회에서 한 분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놨다. 이는 현재 많은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질문이다.
핵심은 대부분 기업이 ESG를 규제 대응용 보고서 작성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비즈니스 방식은 그대로 두고 ESG 담당 부서에서 따로 보고서만 만들어낸다. 진정한 ESG 경영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가 2010년부터 추진해 온 ‘지속가능 생활 계획(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 USLP)’은 참고할 만한 사례를 제시한다. 유니레버의 지속가능 브랜드는 2017년 70% 성장률을 기록하며 다른 부문보다 46% 빠른 성장을 보였다. 물론 완벽한 성공 사례는 아니다.
2023년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200대 기업 중 162곳(81%)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보고서 작성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환경 목표나 사회공헌 활동을 별도로 설정하고, 연말이면 성과를 취합해서 보고서에 담는다. 이런 방식으로는 ESG가 비용 센터일 뿐 실질적인 가치 창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한국 기업들의 ESG 접근법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첫째, ESG 담당 부서가 다른 부서와 분리되어 운영된다. 둘째, 환경 목표와 사회적 목표가 실제 사업 전략과 연결되지 않는다. 셋째, 단기적 비용 증가를 우려해 과감한 투자를 꺼린다. 이는 마치 집의 구조는 그대로 두고 외벽만 새로 칠하는 것과 같다.
ESG가 단순한 규제 대응이나 브랜딩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려면 접근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ESG를 별도의 활동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설계 원리로 인식하는 관점 전환이다.
유니레버의 변화는 2009년 폴 폴먼이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유니레버는 2000년대 초부터 경쟁사 P&G에 1위 자리를 내주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1880년대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위생 비누로 시작해 글로벌 소비재 기업으로 성장한 유니레버는 상품의 품질과 혁신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성장 동력을 잃고 있었다.
폴먼은 취임 직후 월스트리트의 관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분기별 실적 발표 중단을 선언했다. “분기별 실적에 매달리면 장기적 가치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발표 직후 유니레버의 주가는 8% 급락했다. 뭣보다 투자자 반발이 거셌지만 폴먼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변화가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단기 성과 압박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폴먼은 “분기별 목표의 압박이 공개 기업들을 단기적 주가 상승에만 매달리게 하고, 장기적이고 복잡한 미션인 근로 환경 개선이나 환경 보호를 소홀히 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분기별 실적 발표 중단 이후 유니레버의 헤지펀드 지분율은 15%에서 5%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기 빠져나간 대신, 장기적 관점을 가진 투자자가 들어왔다.
폴먼은 주주에게 "최고 수익률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매년 일관된 수익률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2010년 발표된 ‘지속가능 생활 계획’은 기존 지속가능성 계획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대부분 기업이 환경 목표나 사회공헌 활동을 별도로 설정하는 것과 달리, 유니레버는 지속가능성 목표 자체가 비즈니스 성장과 직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3대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10억 명의 건강과 웰빙 개선. 둘째, 환경 영향 절반 감축. 셋째, 수백만 명의 생계 개선이다. 이 목표들이 특별한 이유는 모두 핵심 사업과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실제로 유니레버는 보건 위생 프로그램을 통해 13억명과 소통하고, 234만명의 여성 역량 강화를 지원했다.
하지만 이렇게 설정한 목표의 약 80%만 달성했을 뿐 모든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특히 소비자가 제품 사용 시 물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는 2013년 오히려 15% 증가하면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폴먼은 처음부터 완벽한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다. “목표를 모두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도전을 통해 우리는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를 통한 학습도 중요한 특징이다.
‘지속가능 생활 계획’ 초기 성과는 회의적 시각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2016년에는 지속가능 생활 브랜드가 전체 성장의 60% 이상을 담당했고, 나머지 사업 부문보다 50% 이상 빠르게 성장했다. 이런 성과는 우연이 아니었다. 유니레버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에게 더 강한 어필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를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유니레버 전략은 시장 트렌드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물론 성공 스토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해 지속가능한 조달 목표를 달성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졌고, 일부 프로그램의 실질적 효과 측정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먼 CEO 재임 기간(2009~2019) 동안 유니레버는 총 주주수익률 290%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 영국FTSE(파이낸셜 타임스 주가 지수) 100 지수 수익률이 140%였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을 해냈다. 경쟁사 P&G의 같은 기간 주주수익률이 180%였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과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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