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_22] 소상공인 생태계를 설계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모델 下 스웨덴 스위시의 ‘결제표준’
-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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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오랜만에 지역화폐 앱을 열어 저녁 식사를 배달시키려 했지만, 배달 가능한 식당 목록을 보니 가맹점이 절반 이상 줄어 있었다. 인터페이스는 몇 년 전 그대로였고, 결국 익숙한 민간 배달앱으로 주문을 마쳤다. 지역화폐 앱은 그대로인데, 내 결제 습관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카드를 꺼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결제하고, 스마트워치로 교통비를 내는 게 일상이 됐다. 하지만 정작 소상공인과 주민의 체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전국적으로 확산된 지역화폐 앱은 배달, 장보기, 예약, 포인트까지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며 수퍼앱을 지향하는 등 서비스 확대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된 걸까?
지역화폐 구조를 보면 양면시장 플랫폼의 전형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공급은 가맹점(소상공인), 수요는 주민이다. 역외유출을 줄이는 효과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돈이 지역에 묶인다는 사실만으로 거래가 늘지는 않는다. 사용할 곳이 다양해지고, 쓰는 과정이 쉬워져야 돈이 돈을 부른다. 특히 베드타운처럼 생활권이 외부로 열려 있는 지역은 더욱 그렇다.
지역화폐는 결제 행위를 통해 작동하는 플랫폼이고, 결제 수단의 생명은 편의성과 신뢰성이다. 지역화폐 앱 사용이 감소하는 결정적 이유는 소비자가 이미 체득한 결제 경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네이버쇼핑이나 쿠팡 같은 민간 커머스 앱에서는 카드·간편결제·삼성페이·애플페이까지 연결돼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즉시 결제할 수 있다. 반면 지역화폐 앱은 별도 충전 과정을 거쳐야 하고, 사용처도 제한적이며, 결제 경험도 민간 커머스 앱보다 느리거나 불안정하다.
소비자가 이미 민간 커머스 앱에서 체득한 결제 표준을 지역화폐 앱이 따라가지 못하면, 아무리 할인 혜택을 줘도 사용은 늘지 않는다. 결제는 습관이고, 습관을 바꾸려면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화폐가 기능을 늘리는 대신 결제 인프라를 민간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수퍼앱은 수퍼불편앱이 된다.
스웨덴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스위시(Swish)는 바로 여기서 비교 대상이 된다. 스위시는 2012년 스웨덴 주요 은행이 공동으로 만든 모바일 결제 서비스로, 개인 간 송금뿐 아니라 매장 결제·온라인 결제까지 넓게 쓰인다. 2023년 기준 약 900만 명이 사용하며, 스웨덴 성인 인구의 약 90%가 스위시를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스위시가 성공한 이유는 결제를 국가 차원의 표준 인프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웨덴 중앙은행(Riksbank)은 2024년 3월부터 스위시 결제가 중앙은행의 즉시결제 시스템(RIX-INST)을 통해 은행 간 정산된다고 공지했다. 사용자는 평소처럼 쓰되, 뒤에서는 중앙은행 인프라가 결제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소상공인은 별도 POS 단말기 없이도 스마트폰 하나로 결제를 받고, 즉시 정산을 확인할 수 있다.
스위시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대신, 결제·송금·정산이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중앙은행 시스템과 연결되면서 신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개별 민간 결제 앱이 아니라 스웨덴 전체의 결제 표준이 됐다.
국내 지역화폐와 비교하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지역화폐 앱 자체는 지자체가 기획하지만, 실제 결제 시스템은 위탁 회사가 구축하고 운영한다. 위탁 회사의 기술 역량이 네이버·쿠팡 같은 민간 커머스 회사의 결제 기술 수준이나 적용 범위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만큼 사용자 경험은 뒤처진다.
스위시가 중앙은행 시스템과 연결돼 국가 차원의 결제 표준으로 자리 잡은 반면, 한국 지역화폐는 각 지자체별로 위탁 회사가 다르고 결제 시스템도 분산돼 있다. 결제 속도, 정산 시스템, 오류 처리 방식이 지역마다 다르고, 소비자는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다른 앱을 설치해야 한다. 결제 표준이 없으니, 소비자는 민간 커머스 앱에서 체득한 경험과 비교하게 되고 결국 이탈한다.
지자체 앱이 민간 배달 플랫폼과 기능 개수로 싸우면 이기기 어렵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은 지역화폐를 결제 기본값으로 만들고 소상공인의 정산·프로모션을 가장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배달은 주인공이 아니라 연결된 채널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각 지자체가 서로 다른 시스템을 운영하면, 결제 표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카드 없이 모바일, 스마트폰,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한 결제가 점점 일반화되는 시점에서, 지역화폐는 어떤 결제 표준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소비자가 이미 체득한 결제 경험 수준, 즉 민간 커머스 앱의 간편결제·NFC 결제·생체인증 결제를 지역화폐도 지원해야 한다면, 현재 위탁 회사가 운영하는 시스템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하는가.
이미 구축된 지역화폐 시스템 전환에는 막대한 예산이 든다. 기존 플랫폼을 버리고 새로운 결제 플랫폼으로 재구축하려면, 시스템 개발, 보안 인증, 금융사·카드사 결제망 연동, 소상공인 단말기 교체 또는 연동 지원까지 고려해야 한다. 수백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가 필요할 수 있고, 그 예산을 누가 부담하고 투자 대비 효과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기존 가입자와 충전 금액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전환할 경우, 기존 가입자의 데이터 이전과 충전 잔액 보존이 가능한가. 사용 편의성을 유지하면서도 신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기술적·정책적 방안이 마련돼 있는가.
지역화폐 플랫폼이 정체를 벗어나려면 결제 인프라를 소비자가 체득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재정비는 단순히 기능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결제 표준을 재설계하고 그에 맞는 예산·기술·정책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위탁 회사의 역량 강화든, 시스템 전환이든, 핵심은 결제 마찰을 없애는 데 있다.
앞서 다룬 엣시는 플랫폼이 만든 거버넌스 규칙이 곧 시장의 신뢰가 되는 구조를 보여줬다. 이어 스위시를 언급한 이유는, 결제를 국가 차원의 표준으로 만들어 생태계 전체의 마찰 비용을 낮춘 사례이기 때문이다. 엣시가 거버넌스 설계로 신뢰를 쌓았다면, 스위시는 결제 표준으로 사용성을 확보했다.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소상공인 지원이 주요 공약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지역화폐 할인율을 높이거나, 배달앱 수수료를 지원하거나, 전통시장 온라인화를 추진하는 공약이 쏟아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기능을 늘리는 공약이 아니라, 결제를 표준화하고 소상공인의 거래 마찰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정책이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를 위한 좋은 제도라는 말로 유지되지 않는다. 소상공인에게는 운영이 단순해져야 하고, 주민에게는 결제가 끊기지 않아야 한다. 선언이 아니라 사용성으로 표준이 되면, 소상공인 생태계는 기능이 아니라 작동하는 시스템 위에서 굴러간다.
지역화폐 플랫폼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기능 확장보다 결제 시스템의 단단함에서 나온다. 거래 마찰을 없애는 설계가 곧 소상공인 생존 전략이고, 지속가능한 지역경제의 시작이다. 스위시가 스웨덴에서 보여준 사례처럼, 표준으로 승부하면 생태계는 저절로 따라온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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