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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규의 ESG 인사이트 55] 녹색금융, 독일이 재생에너지 강국이 된 이유

  • 작성자 사진: Jace Shim
    Jace Shim
  • 7월 14일
  • 3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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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최근 지인이 전기차 구매를 고민한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환경에도 좋고 연료비 절약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 구매 부담이 커지는 까닭이다.


친환경 제품을 사고 싶어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망설이는 이런 상황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환경에 좋은 설비나 기술을 도입하고 싶어도 초기 비용과 불확실한 수익성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그린뉴딜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시민과 기업이 체감하는 변화는 제한적이다.


핵심은 돈의 흐름에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뒷받침할 금융 시스템이 없으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일반 은행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초기 투자금이 크고 수익 창출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기술 변화나 정책 변경 리스크도 높다.


반면 부동산 담보대출은 확실한 담보가 있어 위험이 낮다.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바로 '시장실패'의 전형적인 사례다. 사회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시장 논리로는 투자하기 어려운 영역이 생기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문적인 녹색금융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기관을 '녹색금융공사'라는 가칭으로 부르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유사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성과를 내고 있다. 독일재건은행(Kreditanstalt für Wiederaufbau, KfW)과 영국의 그린투자은행(Green Investment Bank)이 대표적이다.


독일재건은행 성공 비결은 단계적 접근에 있다. 개인이 주택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공사를 할 때 장기 저리 대출을 제공했다. 기업 신재생에너지 사업에는 초기 리스크를 정부가 일정 부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민간 투자를 유도했다.


영국 그린투자은행은 좀 더 적극적이다. 단순한 대출기관을 넘어 투자은행 역할까지 수행하며, 유망한 녹색기술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했다.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는 민간 투자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리스크를 분산시켰다.


두 기관 공통점은 정부가 초기 위험을 분담해 민간투자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독일재건은행이 안정적 대출 중심이었다면, 영국 그린투자은행은 더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택했다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재생에너지 강국이 되었고, 영국은 해상풍력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녹색금융기관은 이 두 모델의 장점을 결합해야 한다. 안정적인 대출 상품으로 개인과 중소기업의 녹색전환을 지원하되, 혁신적인 녹색기술에는 직접 투자하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의 강점인 반도체와 AI 기술을 녹색산업과 결합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반도체 기술은 전기차 배터리 관리시스템에서 효율성을 좌우하는 핵심이며, 태양광 인버터의 성능을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AI 기술은 전력망을 지능화한 스마트그리드에서 전력 수급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고,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에서 낭비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란 기존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교환하는 차세대 전력망을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이미 가진 기술력을 녹색산업에 접목시킨다면, 단순히 환경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 글로벌 동향을 보면 전문기관 설립이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경제 전략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으로 탄소 집약적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고,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으로 자국 청정에너지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중국은 이미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분야에서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뒤처지면 수출 경쟁력을 잃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놓치게 된다. 문제는 시간이다.


전문 녹색금융기관이 성공하려면 다음 네 가지 조건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첫째, 환경과 금융 두 영역을 모두 이해하는 전문가가 운영해야 한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수준이 아니라, 어떤 환경기술이 실제로 상용화될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사업모델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기관이기 때문에 자칫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거나 정치적 논리로 투자 결정을 내린다면 국민적 신뢰를 잃게 된다. 따라서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결정하고, 그 성과는 어떤지 정기적으로 공개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환경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무리한 투자를 하다가는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녹색산업 발전에 해가 될 수 있다. 시장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민간 기업들이 따라올 수 있는 적절한 속도로 추진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된 정책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환경 투자는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기관이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개인 차원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 구매나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소상공인도 친환경 설비 도입 시 부담을 덜 수 있다.


기업 차원에서는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 생분해성 소재로 생산라인을 바꾸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새로운 설비 구입과 기술 도입에 수십억원이 들지만, 일반 은행에서는 '과연 이 투자가 수익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대출을 꺼린다. 하지만 전문 녹색금융기관이 있다면, 친환경 전환 투자에 대해 정부가 일정 부분 위험을 분담해주기 때문에 기업은 훨씬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개별적 지원이 축적되면 시장 전체 패러다임이 바뀐다. 정부의 일정 규모 투자가 지속되면, 민간 금융기관도 이 분야 수익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정부 지원 없이도 녹색투자가 활성화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을 지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똑똑한 투자 파트너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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