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_3] 바디샵上 “윤리적 가치제안의 설계와 차별화”
- Jace Shim
- 9월 15일
- 3분 분량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현대 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고객 구매 결정 기준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소비자가 제품 기능과 가격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면, 이제는 그 제품을 만든 기업의 가치관과 사회적 책임까지 꼼꼼히 따져본다. 특히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를 중심으로 한 의식 있는 소비자는 ‘무엇을 사느냐’보다 ‘누구로부터 사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 소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라 비즈니스모델 설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변화다. ESG는 더 이상 기업의 부수적 활동이나 마케팅 도구가 아니라, 고객에게 제공하는 핵심 가치제안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ESG를 가치제안의 핵심으로 만들 수 있을까? 비즈니스모델 캔버스에서 가치제안 블록을 어떻게 재설계해야 할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40여 년 전 영국에서 시작된 한 기업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6년 영국 브라이튼의 작은 해변 마을에서 시작된 바디샵은 화장품 업계의 모든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ESG를 가치제안의 핵심으로 설계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바디샵의 성공과 한계를 통해 ESG 기반 가치제안 설계의 핵심 원리를 도출해보자.
바디샵을 특별하게 만든 첫 번째 요소는 창업자 아니타 로딕의 날카로운 업계 분석이다. 당시 화장품 업계는 구조적으로 세 가지 문제를 가졌다.
첫째, ‘영원한 젊음’과 ‘완벽한 미’라는 비현실적 약속을 통해 소비자 불안감을 조성했다. 광고에서는 도달 불가능한 미의 기준을 제시하며 여성들의 자존감을 오히려 떨어뜨렸다.
둘째, 제품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동물이 실험에 사용됐다. 소비자는 자신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다른 생명체의 고통을 외면해야 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셋째, 원료 조달 과정에서 제3세계 농민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착취적 구조가 만연했다.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공정한 거래 구조에 가담한 셈이다.
아니타 로딕은 “화장품 산업은 과대포장에 쓰레기를 양산하며 특히 여성에게 거짓과 사기를 일삼아 이뤄질 수 없는 꿈을 파는 악덕산업”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각 문제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비현실적 미의 기준 대신 ‘진정한 아름다움’을, 동물실험 대신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제품을, 착취적 거래 대신 ‘공정무역’을 가치제안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이를 주목한 바디샵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고객의 숨겨진 페인 포인트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점이다. 당시 많은 소비자가 동물실험과 환경파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기존 제품을 구매해야 했다. 바디샵은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연 유래 원료의 우수성이라는 기능적 가치까지 제공하는 통합적 솔루션을 개발했다.
가치제안 설계에서 핵심은 △고객의 기능적 필요(Functional Jobs) △감정적 필요(Emotional Jobs) △사회적 필요(Social Jobs)를 동시에 충족하는 통합적 접근이었다. 기능적 측면에서는 자연 유래 원료를 통한 우수한 제품 품질을, 감정적 측면에서는 죄책감 없는 소비를 통한 마음의 평안을, 사회적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소비를 통한 사회 참여를 제공했다.
아니타 로딕은 인류학자와 함께 매년 2~4개월 동안 세계 여행을 떠나 지역 원주민의 민간 미용법이나 전통적인 천연 원료에 대한 노하우를 수집했다. 아프리카 시어버터, 브라질 카스터오일, 인도 헤나 등 각 지역의 전통적인 미용 원료가 바디샵 제품의 핵심 성분이 됐다. 혁신 원천을 기존 R&D 투자에서 원주민과 공정한 거래와 전통 지식의 존중으로 전환한 셈이다.
바디샵 가치제안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실제 제품과 서비스에 구현된 구체적인 약속이다.
첫째,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 정책으로 모든 제품에서 동물실험을 완전히 배제했다. 영국동물생체실험폐지협회(BUAV)가 제정한 화장품에 대한 인도적 기준(HCS)을 철저히 준수하며, 제품 포장에 이를 명시해 고객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1987년 화장품 업계 최초로 공정무역을 시작해 소규모 자작농, 전통 수공예 장인, 낙후된 지역 협동조합과 직접 거래를 시작했다. 현재 바디샵은 공정무역 프로그램으로 21개국 25개 원료공급단체로부터 원료와 액세서리를 공급받고 있다. 전 세계 32만명이 넘는 소규모 농가에 정기적인 소득원을 제공하고 있다.
셋째, 진정한 아름다움(Real Beauty) 개념으로 기존 화장품업계 미의 기준에 도전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완벽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움과 자아존중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제품 포장도 화려하거나 과장되지 않았고,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해 환경에 대한 책임도 함께 고려했다.
가치제안 차별화는 제품 자체뿐만 아니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나타났다. 바디샵은 광고에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모델 대신 다양한 체형과 나이의 일반 여성을 기용했다. 1997년에는 여성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방송 매체가 만드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대하는 세계적인 캠페인도 전개했다.
바디샵 가치제안은 제품 기능을 넘어 브랜드 전체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했다. 매장 디자인부터 제품 포장, 직원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접점에서 ‘윤리적 아름다움’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했다. 매장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교육 무대로 활용했다. 제품 선전 포스터 대신 환경이나 인권 보호 포스터가 걸렸다.
고객은 바디샵에서 쇼핑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 가치관을 확인하고 표현할 수 있다.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동물보호와 환경보존, 제3세계 농민 자립을 지원하는 의미 있는 사회 참여가 됐다. 고객은 제품 사용을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게 됐고, 브랜드에 대한 강한 정서적 연결과 충성도를 형성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일관성은 내부 구성원에게도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가 됐다. 직원은 단순히 화장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활동가라는 자부심을 얻었다.
아니타 로딕은 “일터는 그저 제품을 생산하고 파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혼을 발전시키는 곳”이라며 모든 직원이 사회 참여 활동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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