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심준규의 ESG 모델링_12] 구독이 바꾸는 세상 下- ‘렌트더런웨이’에서 배우는 패션의 미래

  • 작성자 사진: Jace Shim
    Jace Shim
  • 11월 24일
  • 3분 분량
ree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찬바람이 익숙해지는 계절로 바뀌면서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여름옷을 넣고 겨울옷을 꺼내는데, 작년에 산 코트는 한 번밖에 입지 않았고, 재작년 겨울 니트는 유행이 지나 이제 입기 애매하다. 옷장 안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가득한데, 매 시즌 새 옷을 사야 한다는 강박이 여전하다.



패션 업계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옷의 20%만 정기적으로 입는다. 나머지 80%는 옷장 안에서 잠들어 있다가 결국 버려진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9200만 톤의 섬유 폐기물이 발생하는데, 대부분이 매립되거나 소각되면서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2009년 미국에서 시작된 렌트더런웨이(Rent the Runway)는 패션 소비의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했다. 창업자들은 여성이 파티나 행사에 입을 옷을 사느라 수백 달러를 쓰지만 그 옷을 다시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 드레스를 한 번 입고 옷장에 넣어두는 대신 필요할 때 빌려 입고 반납할 수 있다면 어떨까?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했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의류와 액세서리를 구매해 회원에게 대여하고, 반납받은 옷은 세탁과 품질 관리를 거쳐 다시 다른 회원에게 제공한다. 한 벌의 옷이 여러 사람을 거치며 수십 번 착용되는 구조였다.



회원은 월 구독료를 내고 매달 정해진 수의 아이템을 빌려 입을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옷은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다. 초기에는 특별한 행사용 드레스 대여로 시작했지만 곧 일상복까지 확장했다.



출근복이 필요한 여성 직장인과 자주 옷을 바꿔 입고 싶지만 비용 부담이 큰 젊은 세대에게 구독 모델은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임신과 출산으로 체형이 변하는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회원 수는 수백만 명에 달하고 보유 의류는 70만 점이 넘는다.



렌트더런웨이가 증명한 구독경제의 힘은 집카(Zipcar)와 다른 차원에서 작동한다. 집카와 비교하면 렌트더런웨이의 차별점이 명확해진다. 집카가 자산 가동률을 높여 효율성을 극대화했다면, 렌트더런웨이는 과소비 자체를 줄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회원은 옷을 소유하지 않아도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어 충동구매가 감소하고 옷장에 쌓이는 옷의 양도 줄어든다.



세계경제포럼 자료에 따르면 패스트패션 시대에 옷의 평균 착용 횟수가 7번 정도로 급감했다. 구독 모델에서는 옷 한 벌이 수십 번 착용되며 생명주기가 크게 늘어나 순환경제 시스템을 실현한다. 반납된 옷은 전문 세탁과 수선을 거쳐 다시 순환되고 더 이상 대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할인 판매하거나 재활용하며 폐기물을 최소화한다.



고가 디자이너 브랜드는 과거 소수만 소유할 수 있었다. 구독 모델은 이 장벽을 낮춰 합리적인 가격으로 누구나 명품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제품을 경험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경험의 민주화가 가능해졌다.



의류 한 벌을 생산하려면 평균 27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염색과 가공 과정에서는 화학물질이 배출된다. 구독 모델이 확산돼 사람들이 옷을 덜 사게 되면 패션 산업 전체의 생산량이 감소하고 환경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회원들의 대여 패턴과 반납 주기, 선호 스타일을 분석하면 무엇이 보일까? 렌트더런웨이는 이 데이터로 재고를 최적화하고 인기 아이템을 예측했다. 축적된 데이터로 세탁과 수선 주기를 관리하고 옷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품질을 유지했다.



빠른 회전율 없이는 구독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 회원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다음 날 배송되고, 반납한 옷은 48시간 내에 세탁과 검수를 거쳐 다시 대여 가능한 상태가 된다. 렌트더런웨이가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 구축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이유다.



그렇다면 한국 시장에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국내 패션 산업에 적용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위생과 품질 관리다. 한국 소비자들은 대여 의류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있으므로 전문적인 세탁과 살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품질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렌트더런웨이도 초기에 세탁 공정을 가시화하고 품질 검수 단계를 세분화하면서 같은 문제를 극복했다.



시장 진입 지점도 중요하다. 렌트더런웨이가 행사용 드레스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장했듯이, 임산부복이나 아동복처럼 짧은 기간만 필요한 의류부터 시작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임신 기간 동안 체형 변화에 맞는 옷을 월 구독료로 계속 교체해 입는다면 수십만 원을 절약하면서도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패션 구독 모델의 인사이트는 다른 영역으로 확장 가능하다. 명품 시계나 주얼리 구독 서비스는 수천만 원짜리 제품을 소유하는 대신 다양한 브랜드와 모델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유아용품 구독도 잠재력이 큰데,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책, 유모차 같은 고가 제품을 구독으로 제공하면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고 제품 폐기도 감소한다.



캠핑 장비처럼 고가이지만 가끔 사용하는 제품은 어떨까? 레저용품 구독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은 큰 비용 없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고, 시즌마다 최신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



구독 모델이 성공하려면 환경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실질적 이득을 제공해야 한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보관과 관리의 부담에서 벗어나며 최신 제품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구독을 선택하겠다.



자원은 한정돼 있고 쓰레기는 계속 늘어난다. 모두가 소유하는 방식에서 필요할 때 접근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때 우리는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옷장은 가벼워지고 선택지는 많아지며 환경 부담은 줄어든다. 구독경제가 그리는 미래는 소유의 감소가 아니라 경험의 확장이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Copyright ⓒ 마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그:

 
 
 

댓글


더 이상 게시물에 대한 댓글 기능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사이트 소유자에게 문의하세요.
Recent Pos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