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14] ESG는 비용이 아닌 투자 下 DHL, 전기차 3만5000대로 물류 원가 낮추다
- Jace Shim
- 12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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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물류산업에서 비용구조는 곧 경쟁력이다. 배송비의 대부분은 연료비와 차량 유지보수비가 차지하는데, 이 두 항목은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로 작용한다. 유가가 오르면 배송 원가가 치솟고, 차량이 고장 나면 배송 일정이 꼬이면서 고객 불만이 쌓인다.
전통적으로 물류기업은 연료 효율이 좋은 차량을 선택하거나 정비 주기를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디젤 가격은 국제 유가에 따라 계속 변동하고, 엔진이 복잡할수록 고장 위험도 커진다. 근본적으로 디젤 차량에 의존하는 한, 비용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글로벌 물류기업 DHL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선택했다. 시장에서 배송 차량을 구매하는 대신 자체 전기차 개발에 나섰다. 2014년 독일 아헨 공대 스타트업이던 스트리트스쿠터(StreetScooter)를 인수하면서 직접 전기 배송 밴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트리트스쿠터는 DHL이 소유한 전기차 제조 자회사로, 소포와 우편물 배송에 특화된 전기 상용차를 생산한다. 배송 기사가 하루 평균 300번 정차했다 출발하는 도심 배송 환경에 최적화된 설계로, 문 위치부터 짐칸 높이까지 실제 배송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 현재 독일 내에서만 3만5000대가 넘는 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왜 물류 회사가 차량 제조 사업을 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운송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디젤 차량은 연료비가 비싸고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반면, 전기차는 충전 비용이 디젤 대비 60~70% 저렴하고,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디젤 엔진은 부품 수가 1만개에 달하지만 전기 모터는 1000개 수준이다. 부품이 적으면 고장 날 확률도 줄어들고, 정비 비용도 함께 내려간다. 오일 교환, 필터 교체 같은 정기 정비 항목도 대폭 줄어든다.
DHL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총소유비용(Total Cost of Ownership, TCO)이다. 전기차는 초기 구매 가격이 디젤 차량보다 비싸다. 하지만 연료비와 유지보수비를 합산하면 몇 년 안에 디젤보다 저렴해진다. 유럽 연구기관 자료에 따르면 배송용 전기트럭은 디젤 대비 15~23% 낮은 총소유비용을 보인다.
실제 운영 데이터가 뒷받침한다. 스트리트스쿠터 차량 1대는 연간 디젤 약 1900리터를 절감한다. 유지보수 비용은 디젤 대비 2530% 줄어든다. 초기 투자비는 크지만 57년이면 회수되고, 그 이후로는 순수한 비용 절감 효과가 계속 발생한다.
도심 배송에서 전기차는 추가 이점도 있다. 소음이 적어 야간 배송이 가능하고, 배출가스 규제 지역에도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다. 유럽 주요 도시들이 도심 디젤 차량 진입을 제한하는 상황에서, 전기차는 배송 접근성을 확보하는 경쟁력이 된다.
DHL 전략은 차량 자체 제작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기차의 충전 인프라도 직접 개발했다. 운영 중인 3만5000대 전기차를 위한 스마트 충전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전력 사용량을 최적화하고 피크 부하를 방지해 전기료를 추가로 절감한다.
충전 시스템은 각 차량의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24시간 충전 계획을 자동으로 짠다. 충전방식에 있어서 태양광 등 자가발전 에너지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활용하고, 전기료가 저렴한 시간대에 집중 충전한다. 단순히 전기차를 산 것이 아니라 충전 비용까지 최적화했다.
비용 절감은 탄소배출 감축으로도 이어진다. 초기 1만 대 운영 시점에 연간 3만6000톤의 CO2를 줄였다. 유럽연합이 물류 부문 탄소배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기차 전환은 규제 비용을 회피하는 동시에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확보하는 기회가 됐다.
국내 물류기업들이 이 사례를 통해 적용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택배업체의 경우, 허브 터미널에서 각 가정으로 배송하는 라스트마일 구간이 전기차에 최적이다. 하루 평균 주행거리가 30~50km로 짧고, 매일 같은 지역을 반복 배송하기 때문에 충전소 위치를 고정할 수 있다.
쿠팡은 물류센터 중심으로 반경 10~20km 내 배송이 대부분인데, 물류센터에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면 배송 차량이 센터로 돌아올 때마다 충전할 수 있다. 배송 차량 수백 대를 전기차로 전환하면 연료비 절감 효과가 수십억 원 규모로 커진다.
정기 배송 서비스도 좋은 적용 사례다. 급식·케이터링 업체는 매일 정해진 학교와 기업에 음식을 배송한다. 고정 루트라서 필요한 배터리 용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고, 야간에 물류센터에서 충전하면 된다. 대량 배송을 하는 기업일수록 규모의 경제로 전기차 전환 효과가 커진다.
라스트마일 배송 플랫폼은 더욱 유리하다. 특히 음식 배달의 경우 배송 거리가 3~5km로 매우 짧다. 전기 이륜차나 소형 전기차로 전환하면 연료비를 거의 제로로 만들 수 있고, 소음 없는 배송으로 주거지역 민원도 줄어든다.
이케아가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비용을 잡았다면, DHL은 전기차로 운송비를 잡았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비용을 남이 정하는 가격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통제 가능한 구조로 바꾼 것이다.
두 기업 모두 초기에는 큰 돈이 들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용구조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했다. 이케아는 11조원을 투자해 전력을 직접 생산하면서 20~30년 에너지 비용을 확정했다. DHL은 3만5000대 전기차를 직접 만들면서 운송비 변동성을 줄이고 총소유비용을 낮췄다.
비용구조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생명줄과 같다. 같은 물건을 배송해도 비용구조가 효율적인 기업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된다. 이케아와 DHL이 공통으로 보여준 것은 ESG를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비용구조를 혁신하는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에너지든 운송이든, 핵심 비용을 외부에 의존하면 불확실성이 커진다. 반대로 그 비용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경쟁력이 생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가가 오를수록, 탄소 규제가 강화될수록, 먼저 투자한 기업의 우위는 더욱 견고해진다.
전기차 전환은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경쟁력을 위한 선택이다. 재생에너지 투자도 마찬가지다. ESG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비용구조를 재설계하는 투자다. 이 관점의 전환이 지속가능한 기업과 도태되는 기업을 가른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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