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13] ESG는 비용이 아닌 투자 上 이케아, 11조원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비용 잡다
- Jace Shim
- 11분 전
- 3분 분량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기업 경영에서 비용 구조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다.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고 탁월한 마케팅을 펼쳐도, 비용 구조가 경쟁사보다 불리하면 결국 시장에서 밀려난다. 특히 에너지 비용은 제조업과 유통업에게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로 작용한다.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전력 요금이 급등할 때마다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전력회사가 보내는 청구서 금액은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전통적으로 기업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전력회사와 장기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스웨덴 가구 유통기업 이케아는 에너지 비용 대응을 위해 완전히 다른 선택을 했다. 에너지를 외부에서 구매하는 대신 일부 직접 생산하고 있다. 이케아를 운영하는 모기업 잉카그룹(Ingka Group)은 2009년부터 재생에너지 투자를 시작해 현재 17개국에 575개 풍력터빈과 20개의 대형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한다.
전 세계 이케아 매장과 물류센터 지붕에는 93만5000여 개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매장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거대한 평지붕 구조를 기억하겠다. 주차장을 넓게 확보하기 위해 설계된 평지붕이 이제는 발전소 역할을 한다.
태양광 전략 ‘스트룀마(STRÖMMA) 프로젝트’는 이케아가 진출한 모든 국가에 확대 적용되고 있다. 미국 마이애미 매장은 지붕에 설치된 4600여 개 태양광 패널로 매장 전력 소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한다. 핀란드 탐페레 매장은 태양광 발전으로 친환경 건축물 인증을 획득했고, 롬밀라 물류센터는 자체 필요 전력의 32%를 생산한다.
왜 가구 회사가 발전소 사업을 하는 걸까. 핵심은 에너지 비용을 남이 정하는 가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전력회사에서 매달 전기를 사서 쓰면 가격은 국제 유가나 정책 변화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자체 발전 시설을 갖추면 초기에 시설 투자비가 들지만, 이후에는 에너지 생산 비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매달 집세를 내면 집주인 마음대로 월세가 오를 수 있지만, 집을 사버리면 주거비가 확정되는 것과 같은 논리다. 목돈이 들어가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안정적이다.
2020년 기준 이케아가 자체 생산한 전력은 실제 사용량의 132%에 달했다. 필요한 만큼 쓰고 남는 전기를 외부에 판매하면서 에너지가 비용에서 수익 자산으로 바뀌었다. 매장 지붕 태양광만으로도 전체 에너지 소비의 20%를 충당하고, 투자 회수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다.
10년 후부터는 순수한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패널 수명이 다할 때까지 20년 넘게 거의 무료로 전기를 쓸 수 있다. 경쟁사가 계속 오르는 전기요금을 내는 동안, 이케아는 안정적인 에너지 비용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한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서 탄소배출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중요한 효과다. 유럽연합은 기업에게 탄소배출 쿼터를 부여하고 초과분에 대해서는 배출권을 사도록 강제한다. 배출권 가격은 계속 오르는 추세다.
화석연료 전력을 쓰는 기업은 매년 늘어나는 배출권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반면 재생에너지를 쓰는 기업은 배출권을 살 필요가 없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이케아처럼 재생에너지 투자를 미리 한 기업의 경쟁우위가 더욱 커지는 구조다.
이 전략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2021년부터 가구를 납품하는 중국, 인도, 폴란드 협력업체에게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케아가 대량으로 확보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협력업체들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해줬다.
협력업체도 공장을 돌리려면 전기가 필요한데, 전기료가 비싸면 가구 생산 단가가 올라간다. 생산 단가가 오르면 협력업체는 이케아에 더 비싼 가격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제품 원가도 함께 상승한다. 반대로 협력업체의 전기료가 내려가면 생산 단가가 낮아지고, 더 저렴한 가격에 가구를 구매할 수 있다.
실제로 폴란드 협력업체는 풍력·태양광 전력구매계약으로 전기료를 기존 대비 50% 가까이 줄였다. 중국 협력업체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2021년 32%에서 2022년 64%로 두 배 증가했다. 이케아 입장에서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공급망 전체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셈이다.
이케아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부문에 총 75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1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화석연료 난방·냉방 설비를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하는 데 추가로 15억 유로를 투입해 자체 운영 배출량을 85% 줄이는 게 목표다.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동적 대응이 아니라 비용구조를 선제적으로 재설계하는 능동적 전략이다.
국내 기업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국내 철강, 화학,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원가에서 전력비가 15~30%를 차지한다. 포스코와 SK하이닉스가 RE100에 가입하고 해외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배경이다.
유통업과 물류업도 큰 기회가 있다. 이마트, 쿠팡, CJ대한통운처럼 대형 물류센터와 유통매장을 운영하는 기업은 IKEA와 유사한 조건을 갖췄다. 넓은 지붕 면적은 태양광 발전에 최적이고, 7~10년이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중견·중소기업도 자사 공장이나 사옥 지붕에 태양광 패널 설치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의 보조금을 활용하면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핵심은 에너지를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로 방치하지 않고 관리 가능한 비용 항목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다.
시간의 축을 어디에 두느냐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당장 올해 재무제표만 보면 재생에너지 투자는 비용이지만,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면 가장 합리적인 투자가 된다. 에너지 가격이 오를수록, 탄소 규제가 강화될수록, 재생에너지에 투자한 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확고해진다.
비즈니스 모델에서 비용 구조는 생명줄과 같다. 같은 제품을 팔아도 비용 구조가 효율적인 기업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된다. 이케아가 보여준 것은 ESG를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비용구조를 혁신하는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재생에너지 투자는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경쟁력을 위한 선택이다. 에너지 비용을 남에게 맡길 것인가, 스스로 통제할 것인가. 그 선택이 10년 후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Copyright ⓒ 마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