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 7] 지속가능한 채널 전략上 ‘델’의 순환경제 채널 혁신
- Jace Shim
-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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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편리해진 온라인 제품구매, 택배로 도착한 상자를 열면 스티로폼, 비닐, 완충재가 쏟아져 나온다. 이 부피가 큰 포장재를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 과정이 하루에도 수백만 번 반복되면서 포장재 폐기물은 연간 전 세계적으로 1억4000만 톤, 63빌딩을 무려 350개나 쌓을 수 있는 양이 발생한다.
제품 파손을 보호하기 위한 포장이 환경에는 막대한 부담을 주는 역설적 상황이다.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함과 죄책감은 기업 입장에서 채널 전략의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특히 전자제품처럼 정밀한 보호가 필요한 제품일수록 포장재 사용량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델은 고객이 원하는 사양을 선택하면 조립해 직접 배송하는 주문형 생산 모델로 컴퓨터 산업을 재편한 기업이다. 완제품 재고를 쌓지 않고 필요할 때 만들어 보내는 방식은 재고 부담과 유통 비용을 극적으로 낮추며 업계 판도를 바꿨다.
그런데 이 직접 판매 채널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소매점을 거치지 않으니 포장부터 배송, 회수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서다.
2000년대 후반 이 통제권은 기업에게 환경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재해석됐다. 주문형 생산으로 효율성을 입증했듯, 채널 전략에서도 환경과 수익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IT 기업은 전자제품 폐기물 문제로 오랫동안 비판 받아왔고, 짧은 제품 수명과 막대한 포장재 사용, 재활용 어려운 복잡한 설계가 주요 쟁점이었다. 투자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성과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대형 기업 고객은 공급업체의 환경 정책을 평가 기준에 포함시키며 압박을 가했다. 규제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였다.
델은 방어적 대응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차별화 요소로 만들기로 결정했고, 채널의 세 지점인 포장·배송·회수를 순환경제 원리로 재설계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포장 설계 원칙은 Cube, Content, Curb의 첫 글자를 따 3C로 압축됐다.
첫 번째는 부피 최소화다. 작은 상자는 같은 트럭에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게 하고 제품당 운송 비용과 탄소 배출을 줄여준다. 노트북과 데스크톱 포장 부피를 평균 12% 축소하면서 한 컨테이너당 적재 가능한 제품 수가 늘어났고, 물류 효율성 개선으로 직결됐다.
두 번째 원칙은 재활용 가능하거나 재생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다. 석유 기반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을 자연 소재로 대체함으로써 환경 부담을 근본적으로 낮추는 접근법이다.
세 번째는 소비자가 쉽게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복잡한 분리 과정 없이 집 앞 재활용함에 바로 버릴 수 있도록 설계해야 실제 재활용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은 대나무 사용이었다. 나무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며 탄소 흡수량이 높은 대나무를 노트북 배송에 활용했다. 중국에서 풍부하게 자라는 대나무를 현지에서 가공하면 장거리 운송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기존 골판지와 비슷한 강도를 내면서도 화학 처리가 덜 필요했고, 가볍고 충격 흡수가 필요한 제품에 적합한 소재였기에 점차 노트북 출하의 70%까지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이후 더 혁신적인 소재인 버섯 뿌리를 활용한 포장재가 도입됐다. 농업 부산물인 면화 껍질이나 쌀겨에 버섯 균사를 접종하면 뿌리가 자라며 폐기물을 단단하게 엮어 5~10일이면 몰드 형태 완충재가 완성된다.
전통적인 제조 공정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기른 포장재였기에 에너지 투입이 최소화됐다. 무거운 서버급 제품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충격 흡수력을 실험실에서 검증한 후 본격 적용했다. 사용 후 45일 만에 가정 퇴비로 완전히 분해돼 무거운 제품에는 버섯 포장재를, 가벼운 제품에는 대나무를 적용하는 차별화 전략이 가능해졌다.
바다 플라스틱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자 델은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직전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회수해 포장재로 리싸이클링했다.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인도네시아, 아이티, 필리핀 등 21개국 해안가에서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회수한 플라스틱을 세척·재가공해 기존 재활용 플라스틱과 혼합해 포장 트레이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22억7000만개 물병에 해당하는 플라스틱의 바다 유입을 막았고, 이 트레이는 사용 후 다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 마크를 부착해 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포장 소재 전환은 예상을 뛰어넘는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포장재를 2000만 파운드 줄이며 1800만달러(234억원)를 절감했고,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으로는 추가로 100만달러(13억원) 이상을 아꼈다. 탄소 발자국은 11% 감소했다. 친환경 소재가 비용을 높인다는 통념이 깨졌고,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면 오히려 원가 우위를 가져올 수 있음이 입증됐다.
현재 델 포장재 96.4%는 재활용 또는 재생 가능 소재이며, 2030년까지 100%를 목표로 한다. 포장 부피 축소는 배송 효율성과 맞물려 기업 고객용 제품에는 여러 노트북을 개별 포장 없이 하나의 큰 박스에 함께 담아 보내는 방식이 적극 활용됐다. 이 방식은 포장재 사용량을 줄이고 고객 개봉 시간도 단축시키는 효과를 낸다.
사업 차별화 전략이었던 주문형 생산 모델은 배송 최적화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주문 후 조립하므로 완제품 재고를 여러 곳에 분산 보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품 공급업체가 공장 근처에 재고 허브를 운영하며 실시간으로 필요한 부품만 정확히 공급하는 구조는 완제품을 여러 경로로 운송하는 기존 방식보다 물류 단계가 간소하다. 이를 통해 재고 유지 비용과 부품 진부화 리스크가 줄어드는 효과도 얻었다.
델 채널 전략에서 주목할 부분은 제품 수명 종료 후 역물류 시스템이다. 전자제품 폐기물은 연간 전 세계적으로 6200만톤이 발생하지만 재활용률은 22.3%에 불과하다. 델은 제품 수명 종료를 채널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출의 시작으로 설계했다.
소비자와 기업 고객을 위한 무료 회수 프로램이다. 중고 기기는 상태를 평가해 신제품 구매 시 할인으로 전환해주고, 재사용 가치가 없는 기기는 무료로 회수해 재활용한다. 회수 프로그램은 접근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선불 배송 라벨을 받아 택배로 보낼 수 있고, 미국 전역 수천 개 매장과 제휴해 직접 방문 회수도 가능하다.
자사 제품뿐 아니라 모든 브랜드 전자제품을 작동 여부와 관계없이 회수하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받았다. 역물류는 단순한 폐기물 처리가 아니라 가치 회수 채널로 작동하며, 회수한 기기에서 금, 구리, 희토류를 추출해 다시 신제품 제조에 투입하는 완전한 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하드디스크 재활용으로 얻은 금속으로 새 하드디스크를 만드는 클로즈드 루프(Closed Loop) 시스템이 대표적 사례다. 기업 리스 프로그램의 장비를 회수해 차세대 제품으로 교체하는 데 적용했다. 고객은 최신 기술을 유지하면서 폐기물 처리 부담을 덜 수 있고, 기업은 예측 가능한 회수 일정으로 재활용 소재 공급을 안정화할 수 있다.
이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지속가능한 채널이 비용 구조와 직결된 전략이라는 점이다. 채널 전체를 순환경제 관점에서 재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포장 소재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부피 최소화, 배송 효율화, 회수 시스템 구축을 통합해야 실효성이 확보된다.
국내 제조사와 유통사에게 이 접근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출발점은 포장재 재검토부터 시작이다. 과대 포장과 스티로폼 의존도를 줄이고 재활용 가능 소재 비중을 높여야 한다. 대나무나 버섯 포장재가 어렵다면 친환경 포장재 적용 비율을 늘릴 수 있다.
포장 표준화는 물론 여러 제품을 하나의 큰 박스에 담아 보내는 방식은 B2B 시장에서 적용 가능하다. 대형 유통사는 협력사와 공동으로 포장 규격을 통일하면 규모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산업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접근이다.
역물류 체계 구축은 온라인 판매 비중이 높아질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무료 회수 프로그램과 가치 회수 메커니즘을 결합하면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리스 모델과 회수 프로그램을 결합한 순환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할 수 있으며, 제품 수명 종료 시점의 책임을 제도화하고 회수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실효성이 확보된다.
채널 지속가능성은 정량적 목표와 공개 보고로 관리돼야 한다. 국내 기업들도 물류·포장 부문의 탄소 배출을 세분화해 측정하고 개선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델이 주문형 생산으로 효율성의 새 기준을 만든 것처럼, 지속가능한 채널 전략으로 환경과 수익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모델을 이제 따라갈 차례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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