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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규의 ESG 모델링 20] 순환경제를 사업 구조로 만든 기업 下 필립스의 탈소유형 순환

  • 작성자 사진: Jace Shim
    Jace Shim
  • 1월 19일
  • 4분 분량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집에서 거실 전구 하나 나가면 신경 쓰인다. 높은 천장 전구는 사다리를 꺼내야 하고, LED인지 백열등인지 헷갈리고, 규격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정 거실 전구 하나도 이런데 사무실 빌딩이나 공항, 대형 쇼핑몰은 어떨까.



수천 개, 많게는 수만 개 조명을 관리해야 하는 건물에서는 어느 층 어느 구역 전구가 언제 나갈지 예측할 수 없다. 교체 인력 투입, 재고 관리, 전기료 관리까지 건물 관리자 입장에서는 조명 하나하나가 비용이자 끊임없는 관리 포인트다.



만약 조명을 사지 않고 밝기만 구매한다면 어떨까. 전구 교체부터 에너지 관리까지 조명 회사가 모두 책임진다면. 애플은 제품을 회수해서 다시 파는 방식으로 순환을 만들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립스는 아예 제품을 팔지 않는다.



필립스는 130년 역사의 조명 제조사에서 조명 서비스 회사로 전환했다. 제품을 팔지 않고 결과를 팔면서 소유 구조 자체를 제거한 사례다. 전통적인 조명 사업 모델은 전구와 조명기기를 제조해서 판매하고 나면 끝이다. 팔면 팔수록 좋지만 오래 쓰면 쓸수록 다음 판매 기회를 잃는다.



필립스는 이 구조를 뒤집었다.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소유권을 유지하면 제품 수명 종료 시 자동 회수가 가능해지고, 회수한 제품을 재제조해서 다시 설치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순환경제는 이렇게 소유 구조를 바꾸면서 시작된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내구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면 재구매가 감소하고 매출이 줄어든다. 반면에 환경 입장에서는 자주 교체하면 폐기물이 증가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 많이 팔아야 하는 구조와 오래 써야 하는 가치가 충돌하는 산업 구조다.



2010년대 초반부터 필립스는 ‘라이트 애즈 어 서비스(Light as a Service)’ 모델을 도입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독일 함부르크 항구 등에서 주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구독 방식이 아니라 성과 기반 계약 구조다. 고객은 조명기기를 구매하지 않고 연간 일정 수준의 조명 서비스를 계약한다. 제조사가 조명 설치부터 유지보수, 교체, 에너지 관리까지 전부 담당하고, 고객은 계약 기간 동안 연간 또는 월간 서비스 이용료를 지불한다.



기존 모델에서는 조명기기를 판매하고 설치하면 소유권이 고객에게 넘어가고 고객이 관리한다. 서비스 모델에서는 조명기기를 설치하지만 소유권은 제조사가 유지하고, 고객은 밝기 또는 조명 품질을 구매한다.



스키폴공항은 조명기기를 사지 않고 공항 전체에 적정 조도를 유지한다는 결과 중심 계약을 맺었다. 전구 교체, 고장 수리, 에너지 효율 개선 모두 제조사 책임이다.


제품의 서비스화(Product-as-a-Service) 또는 접근권 기반 모델(Access over Ownership)이라고 부르는 구조다. 고객은 제품이 아니라 제품이 만드는 가치만 구매하고, 제조사는 제품 판매 수익에서 장기 서비스 수익으로 전환한다. 인센티브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뀐다.



기존 모델에서 제조사는 많이 팔수록 좋으니까 적당한 내구성이 유리하고, 고객은 자주 고장 나거나 교체하면 비용이 증가해서 불만족한다. 제조사와 고객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서비스 모델은 다르다. 제조사는 고정 계약료를 받으니까 비용을 줄일수록 이익이고, 고객은 안정적으로 오래 쓸수록 만족도가 높다. ‘오래 쓰는 것’이 제조사에게도 고객에게도 이익이 되면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전구 수명이 2년이면 기존 구조에서는 2년마다 판매 기회였지만, 서비스 구조에서는 2년마다 손해다. 따라서 제조사는 전구 수명을 최대한 늘리고 고장률을 최소화하는 최고 품질 제품을 개발할 동기가 생긴다.



모든 조명에 센서와 통신 모듈을 부착해서 IoT(사물인터넷) 기반 스마트 조명 관리 시스템을 운영한다. 실시간으로 밝기를 조절하고, 사용 패턴을 분석하며, 언제 고장날지 미리 예측한다. 자연광이 많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조도를 낮추고, 사람이 없는 구역은 자동으로 감지해서 조명을 줄이거나 끈다.



여기서 필립스가 AI(인공지능)와 IoT 같은 첨단 기술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에너지 효율이 직접적인 수익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기존 모델에서는 전기료를 고객이 내니까 제조사는 효율성에 무관심했지만, 서비스 모델에서는 에너지 비용까지 제조사가 부담하거나 절감분을 고객과 나눈다. AI와 IoT로 에너지를 1% 줄이면 그대로 제조사 이익이 되니까 적극 투자할 수밖에 없다.



소유권을 유지하면 제품이 수명을 다했을 때도 제조사가 주도권을 쥐게 된다. 애플이 트레이드 인 할인으로 회수를 유도해야 하는 것과 달리, 여기서는 회수가 당연한 구조다. 제품 수명이 종료되면 제조사가 직접 회수하고, 회수한 조명은 부품을 재사용하거나 소재를 재활용해서 신규 설치에 재투입된다. 기존 모델에서는 고객이 폐기하고 제조사는 손도 안 댔지만, 서비스 모델에서는 소유권이 제조사에 있어서 폐기물 발생 자체가 구조적으로 최소화되고 더 완전한 폐쇄 순환이 가능하다. 설치-사용-회수-재제조-재설치가 반복되면서 순환이 완성된다.



건물 관리자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 비용이 대폭 감소하고, 유지보수 인력과 비용이 제로가 되며, 에너지 비용도 절감된다. 예측 가능한 연간 고정 계약 비용으로 운영비를 관리할 수 있고, 조명 관리 리스크가 제로가 된다. 재무 구조 측면에서는 자본 지출(CAPEX)이 운영 비용(OPEX)으로 전환되면서 한꺼번에 큰 금액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고, 재무제표상 부채 비율이 개선된다.



환경 보호에 동참한다는 의식 없이도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이라서 선택하고, 결과적으로 에너지 절감과 폐기물 감소를 달성한다. 윤리가 아니라 경제성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핵심은 조명을 LED로 바꾸거나 센서를 다는 기술이 아니다. 소유권을 제조사가 유지하면서 제품 판매가 아니라 서비스 계약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 전환이 본질이다.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 변화가 아니라 인센티브 구조 자체를 바꾼다. 많이 팔아야 하는 구조에서는 제조사가 내구성을 적당히 유지하고 에너지 효율에 큰 관심이 없으며 폐기 후 재활용을 외부에 맡긴다. 오래 쓸수록 좋은 구조에서는 제조사가 최고 품질 제품을 개발하고 에너지 효율 극대화에 투자하며 회수와 재활용을 직접 관리한다. 같은 회사, 같은 제품이라도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면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앞서 다룬 애플 사례는 제품 소유권을 고객에게 넘기되 생애주기 전체를 관리하면서 회수-재판매-재회수로 반복 수익을 낸다. 제품 한 대로 여러 번 파는 구조다. 필립스는 소유권 자체를 넘기지 않고 서비스로 장기 수익을 만든다.



둘 다 순환경제를 구현하지만, 애플은 ‘생애주기 관리형 순환’이고 필립스는 ‘탈소유형 순환’이다. EU(유럽공동체)는 에너지 효율 기준을 계속 강화하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건물 부문 에너지 소비 감축을 요구한다. 자원 고갈이 심화되면서 내구성과 순환성이 경쟁력이 된다.



국내 기업도 제품 판매에서 이같은 서비스 판매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소유권을 유지하면 완전한 순환 구조가 가능하고, 고객과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비즈니스 모델 설계가 가능하다.



지속가능성은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사용하게 하느냐의 문제다. 소유 구조를 바꾸면 인센티브가 바뀌고, 인센티브가 바뀌면 지속가능성은 비용이 아니라 수익 증대 전략이 된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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