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33] 물류의 미래上 창고도 트럭도 없이 세계 물류를 바꾼 회사
-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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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스마트폰 하나로 장을 보고, 옷을 사고, 가전제품을 주문하는 일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졌다. 국내 쇼핑몰만이 아니라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같은 중국 플랫폼에서 직접 구매하는 소비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 소비자의 중국 직구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3조 원을 넘어섰고, 알리익스프레스의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한때 쿠팡에 이어 2위를 기록할 만큼 존재감이 커졌다.
중국에서 주문한 물건이 며칠 만에 집 앞에 도착하고, 배송비는 무료인 경우가 많다. 가격 경쟁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몇 번 받아보면 습관이 된다. 이런 경험이 가능한 이유는 단순히 중국의 인건비나 제조 원가가 낮아서만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 사이 중국 물류 인프라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한 결과다.
중국의 연간 택배 물동량은 2023년 기준 1320억 개를 돌파했다. 미국 전체 물동량의 네 배가 넘는 수치다. 이 규모를 소화하면서도 배송 단가를 낮추고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 물류 산업이 지난 10년간 풀어온 핵심 과제였다. 그런데 물동량이 커질수록 트럭은 더 많이 달리고, 포장재는 더 많이 버려진다는 또 다른 문제가 뒤따른다.
이커머스 성장과 탄소 배출이 정비례하는 구조가 고착되면, 지속가능성은 슬로건으로만 남는다. 더 많이 팔릴수록 환경 부담이 커지는 이 모순을 비즈니스 모델로 풀어낸 회사가 바로 차이냐오(Cainiao, 菜鸟)다. 2013년 알리바바 그룹이 설립한 글로벌 물류 플랫폼으로, 현재 200여 개국에서 운영되며 1억3000만 명 이상 소비자와 10만여 개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셀러를 연결하고 있다.
차이냐오가 다른 물류 회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창고를 직접 짓지 않고 트럭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 세계에 흩어진 물류 파트너사를 하나의 디지털망으로 연결해 전체 흐름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물건을 직접 나르는 회사가 아니라, 수많은 물류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지휘하는 플랫폼에 가깝다.
이 구조 핵심 엔진은 AI(인공지능) 기반 경로 최적화 알고리즘이다. 수억 건 배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어떤 트럭이 어느 경로로 움직여야 공차(빈 차) 운행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계산한다. 차이냐오가 자체 개발한 배차 알고리즘은 세계 물류 최적화 경진대회에서 36개 세계 기록을 수립했고, 이를 실제 농촌 배송망에 적용해 평균 배송 거리를 30% 단축했다.
포장 단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스마트 포장 알고리즘은 상품 크기와 무게 데이터를 분석해 1초 안에 최적 박스 규격을 추천한다. 필요 이상으로 큰 박스를 쓰면 완충재가 늘고 트럭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물량도 줄어드는데, 알고리즘 하나로 연간 3억 개 이상의 포장재 사용량을 줄였다. 종이 운송장을 전자 운송장(e-waybill)으로 전환하면서 종이 사용량 절감 효과도 더해졌다.
소비자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닿는 라스트마일, 즉 물류 거점에서 집 앞까지의 마지막 배송 구간에서도 구조적 혁신이 이뤄졌다. 개별 택배사가 각자의 거점을 따로 운영하던 방식을 ‘차이냐오 포스트 스테이션’으로 통합한 것이다. 중국 전역 13만 개 이상 스테이션이 여러 택배사 물량을 동시에 처리하면서, 중복 배송으로 낭비되던 자원이 공유 인프라 하나로 흡수된다.
이렇게 연결된 네트워크는 탄소 감축 효과를 공급망 전체로 확산시킨다. 차이냐오는 자체 운영에 그치지 않고 유니레버(Unilever), 이리(Yili)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력을 통해 탄소 자산 관리 시스템을 파트너사로 확장하고 있다. 개별 기업의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하고 감축 경로를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플랫폼이 연결한 생태계 전체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수준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이에 ᄄᆞ른 환경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4 회계연도 기준 차이냐오는 운영 전반에서 연간 45만8000톤 탄소 배출을 감축했고, 친환경 포장 전환만으로 15만6000톤을 줄였다. 도심 배송 차량의 99%를 전기차로 전환한 성과도 포함되는데, 이 모든 결과가 자체 물류 자산 없이 데이터와 알고리즘만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차이냐오 모델이 의미 있는 이유는 환경 성과와 수익성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물류 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으니 고정비가 낮고, 파트너 네트워크를 통해 규모가 커질수록 데이터는 쌓이고 알고리즘 정밀도는 높아진다. 효율이 올라갈수록 탄소는 줄고 비용도 함께 낮아지는 선순환 구조다.
국내 물류 기업이 직면한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커머스 성장으로 택배 물동량은 매년 증가하지만, 배송 단가 경쟁은 심화되고 탄소 규제는 강화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더 많이 배송하면서 동시에 탄소를 줄여야 하는 모순을 비즈니스 모델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규제 대응 비용이 경쟁력을 서서히 잠식한다.
차이냐오가 보여준 방향은 자산을 늘리는 대신 연결의 정밀도를 높이고, 데이터가 물류 흐름 전체를 설계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트럭을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그 트럭이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느냐로 경쟁력이 결정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물류 본질이 소유에서 연결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국내 기업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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